글또 10기를 지원하려고 봤더니 삶의 지도를 작성하라고 했다.
이걸 어떻게 쓰지 싶기도 하고, 너무 내 얘기를 자세히 쓰나 싶기도 하다가도 쓰고 보니 나름 의미가 있어서 결국 블로그에 올린다.
사실 마감시간 직전이라 좀 더 잘 쓰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마무리 해서 아쉽다.
칭찬받는 걸 좋아하고 혼나는 건 싫어했던 K-장녀? 미루기는 좋아하는데 본인에게 지는 건 싫어했던 사람
내 또래 중엔 흔치 않은 삼남매의 장녀로 자랐다. 어린 장녀에게 엄마는 엄하셨다. 그래서인지 칭찬받고 싶고, 혼나긴 싫어서 뭔갈 잘 해내려고 했던 게 많았던 거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엄마말 잘 듣는 착한 K-장녀로 자랐고, 그래서인지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스스로에게 지는 걸 싫어했던 것도 큰 것 같다. 사실 뭐든 미루기 일쑤라 칼이 턱 밑에 들어와야 진행하는 경향이 큰데 (지금도 마감 시간 몇 시간 전에 쓰고 있다. 참 고쳐야 할 점이다.) 정말 마지막에라도 어떻게든 해내는 편이었다. 포기하는 게 싫었다. 나한테 지는 것도 싫었다. 어떻게든 해내고는 싶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와중에도 잘 해내고 싶어 했다. K-장녀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그러고 싶어 하는 사람이란 걸 자라면서 알게 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방학 숙제를 방학 내내 미루다가 거의 전날쯤에 몰아서 했던 기억이 있다.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다 풀어야 하는 숙제도 있었는데, 그걸 하루에 결국 다 풀었다. 너무 몰아서 했더니 어찌나 머리가 아프던지 다 풀고 엉엉 울면서 엄마가 사준 롯데 카스테라(좋아하는 과자다)를 먹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 방과 후 수업으로 영어 수업을 듣다가, 더 잘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먼저 영어학원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엄마가 말한 적도 없는데...
그렇다 나는 약간의 마감일 같은 외압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고 싶어 하고, 뭔가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막연히 과학자가 꿈이었던 아이, 늦게 알게 된 소프트웨어 대한 적성
유치원 때부터 손재주가 좋은 편이었다. 가위질을 나이에 비해 예쁘게 잘했고, 종이 접기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수학/과학을 잘하는 편이고,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과학 실험을 하는 것이 재밌었다. 그때부터 장래희망에는 과학자를 적었다. 과학경시대회를 나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성인이 되어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뭘 골라야 할지 어려웠다. 고등학생 때까지 접한 것 말고는 뭘 하는지조차 감도 오지 않았다. 진로와 전공으로 고민을 많이 했고, 수학과/화학과/화학공학과를 옮겨 다니다가 공대를 가면서 공대 기초 과목으로 프로그래밍을 1학기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였다. "아! 이거 나한테 잘 맞을 것 같은데..."란 생각이 나를 따라다니게 된 건...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486 컴퓨터'를 사 오셨고, 그때 어깨너머로 보고 혼자서 한글과 컴퓨터를 이용해서 교회 주보를 만들었었다. 고등학생 때도 html, css를 배워보겠다고 자료를 모으다가 수험 생활이란 압박이 슬슬 시작되면서 그만뒀던 기억이 있다. 그게 수능에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깐. 나는 수능이 중요한 K-장녀, K-고등학생이었으니깐.
어쩌다 대기업 연구원에서 IT개발자가 돼버렸다. 계속 머릿속을 따라다니는 생각 때문에!
과학자가 되고 싶었으니 연구원이 되야겠단 생각이 있었고, 자연스레 석사를 하게 됐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컴공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고, 이참에 전공을 바꿀까 하며 지원도 하고 합격도 했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두려움이 들어서 결국 원래 전공대로 진학을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젤 빠른 것인 줄도 모르고ㅎㅎ)
졸업 후 취준이 길어지면서 이번까지만 하고 안되면 개발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대기업에 합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약 5년간 회사 생활을 잘 해냈다. 왜냐면 난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하려고 하는 사람이었으니깐.
하지만 코로나와 마의 3년 차가 겹쳤을 때 다시 IT개발자로 전향할까란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씩 공부를 시도만 해봤지만 야근도 잦았고 일과 다른 분야의 공부를 퇴근 후에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5년 차가 되었을 때, 커리어를 고민하면서 그동안 쌓여온 다양한 퇴사 사유가 생각났고, 무엇보다도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에 결국 퇴사를 했으며, 여러 준비과정을 거쳐 결국 개발자가 됐다! 관에 들어갈 때 후회하지 않으려고!
도전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감하다면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건 생각보다 도전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고, 800km 도보 여행을 해보기도 했고, 10km 마라톤 등에 나가보기도 했다(곧 생애 최초 하프 마라톤도 나갈 예정!) 일을 일단 벌려 놓으면 포기 안 하고 싶어 하는 미래의 내가 "에휴" 하면서 주섬주섬 치우는 형국이랄까?
그래서 지금은? 욕심쟁이 주니어 개발자
아직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따끈따끈 주니어지만, 일이 잘 맞는 편인 것 같다. 물론 진짜 막 대단한 개발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재밌다. 어릴 때부터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에 이 개발자도 잘하고 싶다. 잘하는 개발자가 돼서 되게 멋있는 코드도 쓰고, 오픈소스에 기여도 하고, 지금은 프론트엔드만 하지만 백엔드도 배워보고 싶고,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사이드 프로젝트도 잘 만들어서 출시도 하고 잘 팔아보고도 싶고! 아무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걸 또 잘하고도 싶고! 욕심꾸러기 주니어 개발자가 되어버렸다.
글을 맺으며
나 너무 길게 적은 건 아닐까... 나 너무 TMI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쓰다 보니 얘기도 길어지고 삶을 돌아보게 되어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다. 커리어 위주로 작성하게 되긴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다른 건 추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글또를 신청한 건 역시 돌아보니 "난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미루기를 좋아해서 나에게 장치를 줘야겠다!"라는 마인드가 컸던 것 같다.
'글또 10기가 되어서 신나지만 고통스럽게 글을 쓰고 있을 나' 혹은 '떨어졌지만 이 기회에 글을 써야겠단 마음을 가질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맺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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